선의로 포장된 질문
대학원 진학을 추천받았다. 표면적으로는 더 넓은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선의에서 비롯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조언에 선뜻 감사함을 느끼기보다, 복잡한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잊히지 않는 대화
몇몇 동료들과 외부에서 오신 파트너 개발자분과 함께 반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자연스럽게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누군가 이러한 취지의 말을 했다.
"A님이나 B님은 이미 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괜찮고, C님과 D님은 앞으로를 위해 대학원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순간, 공기 중에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진심 어린 조언일 수 있기에 누구도 불쾌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투명한 유리벽처럼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이미 괜찮은 사람'과 '앞으로 노력해야 할 사람'으로 세상이 나뉘는 듯한 느낌.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 말의 의도를 곱씹을수록 머릿속은 더 하얘졌다.
'친절한' 잣대와 보이지 않는 벽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이 조직의 '보이지 않는 규칙'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결코 차별이나 무시 같은 거친 형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때로는 '성장을 위한 조언'이라는 아주 친절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친절함 속에는 '우리의 기준은 여기에 있으니, 너도 이 기준을 맞추는 것이 좋을 거야'라는 단단한 전제가 깔려 있었다. 더욱 황당했던것은 사내 학벌싸움에 같이 침 밷던 당사자였기에 ...
나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그날의 대화에서 어렴풋이 직감했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의 퍼포먼스가 월등히 뛰어나 그 기준을 무시할 만큼 대단하지도 않다는 사실 또한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바로 그 지점이 나를 더 깊은 고민으로 이끌었다.
"왜?"
대확원 진학 이야기가 나올때마나다. 그 어안이 벙벙했던 감정을 다시 느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왜 돈만 주만 나눠주는 면허증과 진배없는 대학원 졸업증을 고민해야 하는가?
그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 위해서?
그들이 세운 기준의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기꺼이 시간과 수천만 원의 돈을 써야 하는 걸까?
나의 업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대학원 졸업장이 지금 내가 부딪히는 문제들의 본질적인 해결 능력을 길러줄까? 아니면, 그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분류해 줄 입장권에 불과한가?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서?
어쩌면 이건, 능력이 아닌 배경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을 잠재우기 위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질문에도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왜'를 찾지 못했다면 움직이지 않겠다.
어느 대화에서 시작된 고민은 나를 더 깊은 성찰로 이끌었다.결론적으로 나는, '그 이유와 목적'을 찾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언젠가 학문적 갈증을 느끼고,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 싶다는 진정한 동기가 생긴다면 그때는 기꺼이 도전할 것이다. 또한 그 답이 대학원 진학이라면…
하지만 단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 위해 나의 소중한 자원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 따위 회사에 구질구질하게 남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나의 가치는 내가 증명해 나가는 것이지, 종이 한 장이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왜'가 담겨있지 않은 성장을 위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